대한불교천태종 광수사
소백산의 메아리
불교에 대해 알려 드립니다.

 
작성일 : 18-04-17 14:38
상월원각대조사 법어 (집착을 버려라)
 글쓴이 : 광수사
조회 : 1,049  
법상에 올라 말씀하셨다.

<금강경>에서 수보리존자가 부처님께 여쭙기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보살은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고 어떻게 그 마음을 안주(安住)해야 합니까'라고 하였다. 이러한 물음과 이에 대한 대답은 보살의 삶과 수행의 기본이 된다.
모름지기 수행자는 자기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를 골똘히 생각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경을 외우고 염불을 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바른 수행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격하게 말하면 수행이라는 것과 기도라는 것은 같은 뜻이 아니다. 기도가 수행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마음이 번뇌에서 멀어지고, 마음이 맑아지고, 마음이 밝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생각은 하지 않고 무턱대고 불·보살의 명호만을 부르는 수가 많다. 입으로 불·보살의 명호를 부를 때는 마음은 항상 일념(一念)에 머물러 삼매를 경험해야 한다.
<금강경>의 내용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즉 무상(無上)의 깨달음을 이루려는 보살이 어떻게 마음을 항복하고 안주하느냐는 질문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아상(我相)을 비롯한 사상(四相)에 집착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참으로 옳은 말씀이다. 집착하지 않는 삶이야말로 보살의 삶이며 수행인 것이다.
집착은 나와 남을 분별하는 데서 온다. 나와 너를 분별하고는 나는 너보다 훌륭하고, 나는 너보다 중요하고 , 또 내 것은 네 것보다 귀하고 소중하다고 집착한다. 이렇게 분별하면 자연히 집착하게 되고 집착하면 괴로워지는 것이다.
중생의 모든 괴로움은 집착에서 오는 것이다. 내 몸뚱이, 내 자식, 내 재산 이러한 나에 대한 집착(我相)이 지혜(반야)를 방해하여 깜깜한 무명(無明)의 골짜기로 몰아넣는 것이다.
불자들이 참선수행도 하고, 염불수행도 하고, 기도도 하고, 독경도 한다. 어느 수행을 선택해도 무방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에서 분별을 여의고 집착에서 벗어나야 바른 수행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반야의 지혜는 무집착의 마음이다. 그러니 법(法)에도 집착하지 말고 법 아닌 것(非法)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원효대사는 이러한 경지를 가리켜 '일체의 걸림이 없는 사람은 한 길로 생사의 세계를 벗어난다(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고 하였다. 부디 수행자는 집착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계산동 학하서로63번길 26 (대전 유성구 계산동 714)
전화 042)823-0332~4 / 팩스 042)823-6779
Copyright 2018 (c) 대한불교천태종 광수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