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이란
대한불교천태종에 대해 알려 드립니다.
천태종이란
지금부터 약 1400년 전인 594년 수나라 개황 14년 중국의 지자대사(智者大師)가 법화경을 중심으로 5시 8교 교관과 일심삼관의 수행법으로 선(禪)과 교(敎)를 통합하여 만든 종파(宗派)이다. 지자대사가 계시던 산이 천태산이므로 그 이름을 따서 천태종이라 한다. 우리나라에 처음 천태교학이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 초기 백제 현광법사로 부터 비롯되었으며, 정식으로 천태종이 개립된 것은 고려 숙종 2년 대각국사 의천 스님에 의하여 국청사에서 천태종이 설립되었다. 이후 조선조 억불정책에 따라 5백여년 동안 역사 속으로 은몰되었던 천태종(天台宗)은 근세에 이르러 상월원각 대조사(上月圓覺大祖師)에 의해 중창되어 일천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경이적인 발전을 이루어 가고 있다.
천태종조
천태종 개조 지자대사 (538-597)

중국의 절강성 태주부에 가면 천태산(天台山)이 있습니다.
천태산은 그 높이가 1만 8천장이며 넓이는 8백여 리에 달한다고 또한 봉우리가 층층으로 8개가 솟아 있으며 그 모양이 마치 상태(上台), 중태(中台), 하태(下台)의 별자리와 비슷하기에 중국에서 는 이 산을 천태산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천태산은 본래 도교(道敎)의 성지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러나 불교의 유명한 큰스님들께서 이곳 천태산에서 수행을 많이들 하셨기에 이제는 도교의 성지보다 불교의 성지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천태종을 개립(開立)하신 천태지자(天台智者: 53 8- 597)대사께서 수행하신 이후, 이 천태산은 천태종의 성지로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천태지자대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1,400여 년 전 중국 남북조 말기에서 수나라 시대에 걸쳐 활동하셨던 중국 불교사의 큰 선지식이셨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천태산에 머무르셨기에 사람들은 흔히 지자대사를 일컬어‘천태대사(天台大師)’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던 시대 에 부모님을 여의는 아픔을 겪게 되셨고 이는 스님이 출가를 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8세가 되던 해, 스님은 출가를 하시고‘법화삼부경’에 매진하십니다.
부모님을 여읜 아픔이 큰 만큼 구도(求道)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보다도 남달랐기에 결국 32세가 되던 해 법화 삼매(法華三昧)의 큰 깨달음을 증득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스님께서는 8년 간‘와관사’라는 절에서 중생을 위한 교화활동을 펼치시며 당시의 힘들고 고달팠던 서민들에게 큰 의지처가 되십니다. 스님께서는 다시 천태산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11년간의 오랜 수행을 거치신 후, 참선과 교리를 융합하신 천태법화세계를 나투셨는데 이것이 바로 천태종의 뿌리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천태종 개창조 대각국사 의천 (1055~1101)

우리나라의 천태종은 고려시대, 국청사(國淸寺)라는 절에서 의천 대각국사(義天 大覺國師)에 의하여 처음 종단으로 개창되었습니다.
의천스님은 고려 문종왕(文宗王)과 이씨 왕후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나신 한 나라의 왕자님이셨습니다.

의천스님께서는 11세에 아버지이신 문종왕의 권유로 당시의 왕사(王師)였던 경덕(景德)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셨습니다. 그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의천 스님도 왕자의 신분과 부귀영화를 버리고 구도(求道)의 길을 선택하십니다. 출가 후, 스님께서 많은 학인(學人)스님을 가르치시다가 31세가 되시던 해, 중국의 송나라로 법을 구하는 구법(求法)의 길을 떠나시게 됩니다. 그리고 14개월 동안 중국을 두루 돌아다니시며 당시 유명했던 선지식과 법 을 논하고 천태법화사상을 공부하시어 과거 천태지자대사의 큰 뜻을 함께 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천태대사께서 수행하셨던 천태산에 올라 고려에 천태의 종풍을 크게 일으키실 것을 발원하시고 구법활동을 마치시고 다시 고려로 돌아오십니다.

귀국과 함께 의천스님께서는 중국의 송나라, 요나라, 그리고 일본 등으로부터 4700여 권의 서적을 수집하시고 이것을 기초로 고려 속장경의 근간이 되는‘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을 편집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과거 천태대사께서 그러하셨듯이 힘든 세파 속에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올바른 의지처를 마련해 주시고자 국청사를 중심으로 천태산에서의 발원(發願)에 따라 고려 천태종을 처음 개창하시게 됩니다.

당시 고려불교는 교리에만 치중하는 교종(敎宗)과 교리를 무시하고 참선만을 고집하는 선종(禪宗)이 서로 대립하여 자신의 우월함만을 내세웠던 시기였습니다. 그러한 때에 의천 스님께서 고려 천태종을 개창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고려 천태종의 개창은 서로 대립했던 교종과 선종을 하나로 통일함으로써 민심을 안정시키고 국민의 가치관을 올바로 세워 국가번영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함에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천스님께서 이 땅에 개창하신 고려 천태종은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숭유억불(崇儒抑佛)이라는 쇠퇴의 역사에 직면하게 됩니다. 조선 태종은 고려 때부터 11종(宗)으로 내려오던 모든 불교의 종파를 천태종, 율종, 법상종, 삼론종, 화엄종, 진언종, 선종의 7종으로 축소시켰으며 이는 다시 세종에 들어서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이라는 양종으로 축소되는데 이때부터 천태종은 역사 속에 사라지게 됩니다.

한국 천태종 중창조 상월 원각대조사 (1911-1974)

상월원각 대조사님께서는 1911년 음력 11월 28일 강원도 삼척군 노곡면 상마읍리 봉촌마을에서 밀양 박씨가문 밀성대군의 후예로 태어나셨습니다.
부친이신‘박영진’거사님과 모친이신‘삼척 김씨’사이의 2대 독자로 태어나신 대조사님께서는 속명은 준동(準東)이시고 법명(法名)은 상월(上月), 법호(法號)는 원각(圓覺)이십니다.
어려서부터 남다르게 출중하셨던 대조사님께서는 인연의 도래와 함께 큰 뜻을 품으시고 결국 15세가 되던 해 음력 3월 봄날에 출가를 결심하시게 됩니다.

스님께서는 출가 후, 수 년 동안 바랑을 메고 운수(雲水)가 되시어 명산대찰의 선지식을 찾아 교학을 익히셨는데 당시의 유명한 강백이나 선사들은 스님의 명석한 혜지(慧智)와 뛰어난 선지(禪旨)에 찬탄을 금치 못하였다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일본의 탄압이 더욱 심해지자 스님께서는 더 이상의 운수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아시고 강원도 태백산 기슭 원효대사께서 수도하셨다는 석굴에 주석하십니다.
스님께서는 석굴에서 솔잎과 쑥 등으로 연명하시며 2년 동안 지관(止觀)수행에 매진하십니다. 그러던 중 42년 가을 큰 소식을 얻으시고 지금의 구인사 연화지에 백연화가 만개한 가운데 관세음보살님께서 미소 짓고 서 계신 것을 친견하십니다.

그해 겨울, 스님께서는 석굴을 나오시어 중국의 관음영지인 보타락가산과 천태종의 개창지인 천태산을 참배할 것을 발원하시고 중국으로 건너가십니다.
먼저 주산열도(舟山列島)에 있는 보타락가와 천태종의 근본도량인 천태산 수선사(修禪寺)를 참배하시고 수양제가 세운 국청사(國淸寺)를 찾아 큰스님들과 법담을 나누시며 장차 관음신앙과 천태종지를 한국에 펴고 다시 천태산을 찾겠다고 발원 하시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오십니다.
귀국 후 스님께서는 국청사에서의 발원대로 천태의 법성(法城)이 될만한 곳을 찾아 길을 나서셨고 충북 단양군 영춘면 백자동 동학(洞壑)입구에서 그 발걸음을 멈추셨습니다.
소백산이 불연(佛緣) 깊은 곳이라는 옛 기록처럼 스님께서 찾으신 곳은 크고 작은 봉우리가 좌우로 늘어선 곳으로 그 모습이 마치 연꽃 봉오리와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곳 연화지 양지 바른 곳에 초암(草庵)을 얽어매고 석장을 내리셨는데 그곳이 바로 석굴에서 수행 끝에 친견하셨던 백연화(白蓮華) 속 관세음보살님께서 서 계셨던 자리이며 오늘날 총본산 구인사 5층 법당이 세워진 자리입니다.
스님께서는 이곳에서 세속의 왕래를 끊고 수행에만 전념하셨습니다. 며칠이고 앉는 자리를 뜨지 않으시며 추운 겨울 손발에 동상이 걸려도 끊임없이 불퇴전의 정진을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一九五一 신묘년(辛卯年) 음력 12월 28일‘한 마음 움직이지 않으면 만법(萬法)이 일여(一如)하다.’는 오묘한 경지와 ‘모든 법이 본래 무상(無常)이요 무생(無生)하다.’는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성취하시고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읊으셨습니다.

山色古今外 산색은 고금 밖이요,
水聲有無中 물소리는 있고 없고 중간이로다.
一見破萬劫 한번 보는 것이 만겁을 깨뜨리니,
性空是佛母 성품 공한 것이 부처님 어머니로다.

대도(大道)를 이루신 후, 천 사백 여 년 전 중국의 천태지자대사께서 천태일승(天台一乘)의 진리를 천명하셨듯이, 고려의 의천 대각국사께서 중국의 천태교관을 전지하여 고려천태의 종지(宗旨)로 삼아 교계의 새 기풍을 일으켜 선교제종(禪敎諸宗)을 다 통합하셨듯이, 상월원각 대조사님께서는 어려운 시기에 참된 자아의 개현, 참된 생활의 구현, 그리고 참된 사회의 실현을 위하여 대중불교의 구현, 생활불교의 실천, 애국불교의 건립이라는 새로운 불교운동을 전개하셨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조사님께서는 종단의 근간을 이루는 법어(法語)와 교시문(敎示文)을 차례로 내리셨는데 1971년 5월 1일에는 친히 교화의 기본과 지침이 되는 법어를 발표하셨고 이어 같은 해 10월 26일에는 종단이 나아갈 방향과 종지 그리고 종통에 관한 교시문을 발표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1400여 년 전 오랜 역사 속에 이어진 중생구제라는 천태종의 오래된 사명이 불성(佛性)의 개현, 밝은 생활의 창조 그리고 밝은 사회의 실현으로 다시금 중흥된 것입니다.

3대 지표
  • 애국불교(愛國佛校)를 건립(建立)한다.
  • 민족중흥(民族中興)의 과업(課業)에 헌신(獻身)한다.
  • 복지사회(福祉社會) 건설(建設)에 이바지한다.
  • 사회정화(社會淨化) 운동(運動)에 적극 참여(參與) 한다.
  • 민족도의(民族道義) 재건(再建)에 적극(積極) 힘쓴다.
  • 생활불교(生活佛校)를 지향(指向)한다.
  • 기복불교(祈福佛敎)에서 작복불교(作福佛敎)를 지향(指向)한다.
  • 유한불교(游閑佛敎)에서 생산불교(生産佛敎)를 지향(指向)한다.
  • 우상불교(偶像佛敎)에서 실천불교(實踐佛敎)를 지향(指向)한다.
  • 생활(生活) 즉 불교(佛敎)의 이념(理念)을 실천(實踐)한다.
  • 대중불교(大衆佛校)를 구현(具現)한다.
  • 가람불교(伽藍佛敎)에서 민중불교(民衆佛敎)를 지향(指向)한다.
  • 출가불교(出家佛敎)에서 재가불교(在家佛敎)를 지향(指向)한다.
  • 염세주의(厭世主義) 불교(佛敎)가 아닌 구세주의(救世主義) 불교(佛敎)를 지향(指向) 한다.
3대 강령
  • 개인완성(個人完成) - 공명한 신앙으로 인간(人間)을 완성한다.
  • 불국토 건설(佛國土 建設) - 정대한 교화로서 불국(佛國)을 건설한다.
  • 법성체 결합(法性體 結合) - 화합한 업무로서 세계(世界)를 정화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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